판소식

[활동가 정책 교실 후기 / 1회]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부에 전할까?

  •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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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ㅣ 전쟁없는세상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이 되려면?"

2022 판 교육 #4 <활동가 정책 교실> 기획은 위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정책화와 입법화의 기본 개념과 과정을 이해하고 사례를 통해 정책・입법 제안과 대응의 실질적인 방안을 알아본 시간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3회에 걸쳐 진행된 📝 교육 후기를 나눠요. 

 




강사 변재원은 2021년 12월 31일까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면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부분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행정학 박사과정에 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와 정책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해요. 

포스트잇에 자기 소개와 교육에 바라는 점을 쓰고 모둠별로 나누고 발표하면서 교육이 시작됐는데요. 여성, 이주노동, 환경, 인권,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했어요. 참여자들은 네트워킹, 정치적 목소리를 효능감 있게 내는 방법, 역량강화, 현장과 정책이 만나는 지점, 사회문제를 정책적・제도적으로 풀어내는 방법 등에 대해서 적절한 예시를 듣고 싶다는 바람을 나누었습니다. 

강사는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부에 전할까’라는 주제를 이해하려면, ‘시민’, ‘정부’,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해요. 근대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죠. 그러면 외국인 노동자나 발달장애인 등의 권리를 어떻게 할지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대통령실인지 서울시청인지 서울교통공사인지 고민해 봐야하고, 목소리를 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정리해야 해요. ‘시민’, ‘정부’, ‘목소리’의 주체와 객체를 정의하고 각각의 방법을 명확하게 얘기하면서 운동지형에서 자리를 다시 한번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 시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장 오래된 정치 방법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 민주주의에는 복잡한 메커니즘들이 존재했어요. 고대 아테네에서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했죠. 여기서 시민은 자유인이고 남성이에요. 여성과 장애인은 자격이 없었어요. 추첨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도시국가 규모에서는 이게 성립이 됩니다. 전문위원회와 감독회가 따로 있는데요. 예를 들어 전쟁을 앞두고 있다면  위원회에 있는 전쟁전문가들이 모여서 선박을 더 건조해야 할지 여부를 논의해요. 집단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서 투표를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죠. 


📢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행정의 등장 


그러나 현재는 이런 모델이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납득이 되지 않아요. 정치와 행정이 직업의 영역이 됐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의사결정 구조가 점점 치밀해졌어요. 왕권이나 아니면 중앙 정부가 원했던 모델은 하나에요. '너네가 주민한테 뽑혔으면 너네가 책임과 권한을 다 가져가라'는 식이죠. 옛날에는 우리 관악구의 결정 사항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잠깐 세종시 같은 데 가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결정까지 하고 오는 겁니다. 거기서 무슨 결정을 할지 모르니 우리 중에 제일 잘난 놈을 보내자. 즉, 탁월성의 원칙이 발휘되기 시작해요. 직업 정치인들과 민중과의 괴리감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시민의 역할은 투표를 잘하는 걸로 바뀌고, 선출된 자들이 잘 대변해 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살아갈 뿐이에요. 


📢 현대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역할: 투표, 시청(청중민주주의)


그러나 제일 탁월한 사람을 뽑으면 결정을 잘할 수도 있지만 자기 이익만 챙길 수도 있죠. 헌법상에 자유위임의 권리라는 게 있어요. 국회의원을 뽑았으면 이래라 저래라 못한다는 뜻입니다. 뽑았으면 끝이라는 것이 선거민주주의의 특징이에요. 현대민주주의의 특징은 청중민주주의라고도 할 수 있죠. 대중이 청중인 줄 알아요. 의사결정을 하면서 주목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심화가 됩니다. 팬덤정치가 청중민주주의의 극대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그러나 여전히 직접 참여하는 시민이 있다


현대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투표 숫자일 뿐이죠.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니까 찬성・반대 딱 이 정도만 고민하게 되거든요. 직업 정치인과 직업 행정인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요. 시민사회운동은 ‘시민들이 거수기로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투표나 청중임을 불신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다만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에 여기 모였을 겁니다. 숫자 1의  노릇만 하지 않겠다고 모인 거죠. 하지만 불리한 지형에 있어요. 강서구 서진학교 건립, 노원주민대회, 스쿨미투, 정보공개청구 등의 사례가 있죠. 유권자 역할만 하려면 이런 거 안해도 되요. 그냥 한방병원 지으라고 하고 그 사람한테 표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로 성에 차냐'라는 질문을 해봐야 되요. 현대사회에서 시민이 참여한다는 것의 의미는 정치인들의 권한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거예요.


📢 제도적으로 모이는 방법들


제도 안에서 국민의 뜻을 받아들였던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 사례를 기억하시죠? 문재인 정부 때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죠.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 정책 의사결정을 하는 시민이 누구냐를 놓고 엄청 싸웠다고 해요. 원전 주변 지역에서 뽑을지 국가단위 사업이니 전국민을 대상으로 할지 의견이 분분했답니다. 결국 가산점을 주지 않고, 원전이 있는 게 좋다는 것이 결론이었다고 해요. 이런 방법은 자원이 너무 많이 들고 모든 정책을 이렇게 결정할 수 없기에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정부가 최종 결정한다’라고 하죠. 그런데 이때 ‘정부’는 누구일까요?  


📢 누가 정부인가? 어떻게 접근할까?



<출처: 변재원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부에 전할까' 교육자료>



2022년 정부조직관리정보시스템에 의하면 행정부에는 18부 4처 18청 6위원회가 있습니다. 정부에 대응한다고 할때 정부는 소극적으로는 이곳들을 의미해요. 기획재정부 아래에 청들이 있어요. 외우기 쉽게 조국관통이라고 하는데 조달청, 국세청, 관세청, 통계청입니다. 어떤 국회의원이 기재부를 담당한다면 조국관통까지 다 질의를 하게 되요.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은 이 정부조직도를 외워야 합니다. 지형도를 알아야 우리의 목소리를 어디에 전달할지 알 수 있잖아요. 활동지원서비스 문제를 고용노동부에 얘기해도 의미가 없고 저상버스를 보건복지부에 얘기해도 의미가 없어요. 가끔 진짜로 그런 실수들이 발생하거든요. 

여기서 다시 실국과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들도 생겨요. 한국의 공무원제도는 1~9급이죠. 6~9급은 시민운동을 하면서 싸울 일이 별로 없어요. 일선에서 정책을 집행하지 설계하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통 집행 과정에서 민원을 갖고 싸울 수는 있지만 흔치 않은 케이스에요. 보통 시민사회운동의 제안은 정책의 설계나 방향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못해도 5급 이상부터 창구가 되요. 실장 아래 국장, 그 아래 과장이 있고 과장 아래에 사무관이 있어요. 주무관은 현장일을 하고 자료도 만들죠. 어떤 통로로 어떻게 민원을 넣고 예산을 집행하며 법안을 만들지를 정하려면 결국은 실무자가 딱 정해져야 해요.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정부에서 분명히 어느 부처가 이걸 감당해야 하니 그걸 알아야 그 사람과의 면담을 추진할 수 있겠죠. 그냥 대통령 나오라고만 하면 안 나와요. 기존에 존재하는 사업을 좀 더 크게 키우는 운동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제도화하는 운동이라면 실국과를 여러분이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정부를 비판한다고 하면 공무원들이 아무런 타격감을 느끼지 않아요. 국가 공무원이 110만이 넘거든요.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기에 대한 책임으로 느끼지 않아요. 장애인 정책의 경우 장애인 정책국이라는 게 따로 있어요. 저상버스를 가지고 장애인 정책국에 가면 될까요? 국토교통부에 버스 운영과가 있고 대중교통국이 있어요. 저상버스는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을 위한 버스가 아니라 국민이 타는 버스입니다. 그러니까 국토교통부가 책임을 져요. 번지수를 찾는 연습부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공사, 공단, 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이 있어요.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정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국민연금공단의 소관업무일 가능성도 있어요. 건강권 활동하시는 분들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 따질 수 있죠. 민간 기능이 있으나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운영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병원과 보건과학연구소 등은 기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정부 돈이 들어갑니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개입할 수 있어요.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싶다라고 외치면서 서울교통공사에 면담을 요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행정부의 산하기관에 면담을 요청하는 거예요. 민간병원이 장애인이나 노인 중에 아프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받지 않으면 공공병원이나 서부병원 같은 곳에 갈 수 있어요. 출자와 출연기관이 있습니다. 여기도 다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당해요. 

중앙정부나 지자체・자치구에서 어느 실국과 맞닿아 있는지 끊임없이 체크하세요. 그래야 공허한 메시지가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없는 채로 규탄하면 누가 규탄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아무런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요. 정보공개청구도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죠.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공무원들이 전달해 줍니다. 하지만 실국과에 대한 기본적인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난감해져요. 정보공개청구는 정보를 알려달라고 하는 거지만 공직자 입장에서는 공격이나 감시를 받는다고 예민하게 해석해요. 정보공개청구법에 따르면 답변을 해야 하고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답변해야 합니다. 그 답변이 성에 차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또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주권자의 힘이에요. 공무원들이 취소해달라고 전화를 하기도 해요. 그러면 자료가 없다고 기재해 달라고 요구하면 됩니다. 공무원이 자료가 없다고 기재를 하는 것은 공문서이므로 법적인 효력을 가지며 책임도 져야 하거든요. 취소는 청구자만 할 수 있어요.





1년짜리 강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책화의 방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다룬 알찬 시간이었어요. 활동을 하면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려면 대중을 설득하는 동시에  번지수를 잘 찾아서 정부가 협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렵고 힘들었던 정책화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