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희/판 칼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서울시NPO지원센터2022.05.15조회 595스크랩 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서울시NPO지원센터, 2022. 5. 16.

박한희 ㅣ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020년 8월 서울 지하철 신촌역에 한 광고가 게시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배경으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는 문구가 담긴 광고였다. 이는 2019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고자 게시한 광고였다. 그러나 게시 후 이틀 만에 광고 현수막이 칼로 찢겨 크게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후일 검거된 범인은 경찰에 “성소수자가 싫어서” 그랬다고 이야기했다.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기념일을 맞아 성소수자가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가해진 이러한 증오범죄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일이기도 했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 제정되기까지


매년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phobia , Biphoiba, Inter & Transphobia)이다. 영문 앞글자를 따서 아이다호(IDAHOBIT)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날은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에서 동성애를 제외한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이 날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행동들이 이루어지며, 한국에서도 2022년 용산역 광장에서의 집회와 대통령실 앞을 지나는 행진이 진행되었다. 

질병분류에서의 삭제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기념일로 이어진 것은 역사적으로 병리화의 낙인이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미친 영향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 동성애는 중세시대 기독교의 영향으로 오랜 기간 죄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 성과학의 발전과 함께 동성애에 대한 논의는 종교의 영역에서 과학·의학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당시 동성애는 왼손잡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다양성 중의 하나이므로 의학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들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했고, 다수를 차지한 것은 동성애를 정상적 인구집단에서 벗어난 병리적 현상으로 보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결과 미국정신의학협회는 1952년 펴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1판에서 ‘동성애(homosexuality)를 ‘성적 일탈(sexual deviation)’의 하나로 규정하였고, 1977년 세계보건기구 역시 국제질병분류 제9판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하나로 분류하였다. 

이렇게 공식적 의학체계가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함에 따라 ‘치료’를 한다는 명목으로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강제로 바꾸어 놓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소위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라 불리는 이러한 행위들은 실제로는 의학적으로 어떠한 효과도 없음에도 오랜 기간 의료현장에서 자행되어 왔다. 여기에는 뇌엽절리술, 전기충격, 최면혐오요법과 같은 비인도적인 의료행위들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을 끝낸 것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힘이었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으로 조직화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병리화에 맞서 성소수자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드러내왔고 인권친화적인 정신의학 전문가들과 연대를 맺었다. 미국의 법학교수 켄지 요시노의 책 <커버링>에서는 그러한 운동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970년 미국정신의학협회 총회에서 한 정신의학자가 혐오 치료법에 대해 발표할 때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당신, 전문의 실습을 어디서 했어, 아우슈비츠?”라고 소리치며 프레젠테이션을 방해했다. 발언 순서를 기다리라는 요청을 받으면 활동가들은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는 5000년 동안 기다렸어!..그리고 1년 뒤에 한 게이 정신 의학자가 최초로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 결과 1973년 미국정신의학협회는 마침내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2판에서 동성애를 삭제하였다. 그리고 1990년 세계보건기구 역시 국제질병분류 제10판에서 동성애를 제외하였다. 수십 년간 질병으로 간주되어 온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제외한 이 결정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낙인, 차별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분명한 선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날을 기념하여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 제정된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성소수자 운동


<차별금지법 4월 제정 쟁취 평등텐트촌 & 단식투쟁> 7일차인 4월 17일, 필자(왼쪽)와 류민희 변호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웹사이트


한편으로 5월 17일은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재 총 43개의 인권단체로 구성된 연대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이 2008년 5월 17일에 창립되었기 때문이다. 무지개행동의 창립은 2007년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물이다. 당시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보수개신교 등의 항의를 받자 ‘성적지향’을 비롯한 7가지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는 이른바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를 일으켰다. 이에 항의하고자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이 결성되었고, 이후 공동행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상설연대체인 무지개행동이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성소수자의 병리화에 맞선 운동이 성소수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치료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의학계를 향해 치료 그 자체가 필요없음을 이야기해왔듯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 역시 성소수자들의 삶의 투쟁을 사회에 전하며 차별을 없애기 위한 기본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앞서 본 미국정신의학협회 총회에 난입했던 미국 활동가들처럼, 2017년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차별금지법이 필요없다고 말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참석한 포럼에서 외친 성소수자 활동가의 외침은 아직도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저는 동성애자이고 여성입니다.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당시 발언 순서를 기다리라며 청중들이 ‘나중에’를 외쳤던 장면은 역시 앞서의 1970년 미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투쟁의 역사가 이처럼 반복되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 성소수자 탈병리화 운동이 결실을 이루었듯이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리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다 할 것이다,


차별을 없애고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질병의 낙인은 여전히 이 사회에 남아 있다. 지난 13일 사퇴한 김성회 종교다문화비서관이 ‘동성애도 흡연처럼 치료 가능하다’고 말한 것이 그러하다. 지난 1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주최로 열린 평등법(차별금지법) 찬반토론회에서 반대쪽 패널로 나온 인사가 역시 동성애는 치료가능한 질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모든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법을 만들자는 자리에서 여전히 성소수자를 비정상정인 존재로 보고 지우려 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병리화에 맞서고 ‘전환치료’를 근절하려는 성소수자 운동은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로 살면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는 주류의 요구에 대해 그러한 만들어진 정상성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긍정하겠다는 외침이었다.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성소수자 운동은 차별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고 포기하라는 사회의 억압에 맞서 차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한 투쟁이다. 누구나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누구도 질병과 범죄의 낙인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본법으로서,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국회와 정부가 하루빨리 자신의 마땅한 책무를 다하길 바란다. 


* 이 글은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