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민/판 칼럼]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사회운동의 강력한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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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사회운동의 강력한 무기


서울시NPO지원센터, 2022. 8. 23.

최정민 ㅣ 전쟁없는세상 



최정민(오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가 ‘사회운동 전략’을 주제로 3편의 ‘판 칼럼’을 연재합니다. 두 번째 글은 MAP이라는 툴로 운동의 단계를 설명하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실패를 자각하고 이를 딛고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장기적이 관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1편] 사회운동에서 전략적 사고는 왜 중요한가 

[2편]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사회운동의 강력한 무기 

[3편] 효과적으로 데모하기-198가지 행동의 종류




지난 번 활동가 서재 ‘판 칼럼’을 통해서 ‘사회운동은 종종 수십 년 헌신해서 성과를 일구고도 만족스럽지 않은 개혁에 그친 것으로 평가하며 오히려 활동가들이 침잠해 들어가는 경우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회운동이 법률의 개정이나 제도의 변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나중에 밥숟가락을 얻는 정치인들이 마치 일을 다 한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활동가들이 실망해서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고 적으면서 사회운동에 관한 전략적 사고(장기적인 목표와 전략, 전술 이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2019 아덱스 직접행동 준비모임에서 액션 원칙 정하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필자 / 출처: 전쟁없는세상 https://www.flickr.com/photos/worldwithoutwar/>


하지만 활동가들에 대해 이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이 아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Movement Action Plan(MAP)이라는 전략체계 툴을 개발한 사회운동가이자 작가, 비폭력 트레이너 빌 모이어(Bill Moyer)도 이 툴을 개발한 계기가 활동가들로부터 나와 비슷한 느낌을 느끼고부터였다. 1970년대 말, 미국 뉴햄프셔 시브룩 핵발전소에서 벌어진 클램쉘연합(Clamshell Alliance)의 직접행동은 당시 새로운 사회운동(new movement)의 원형으로 평가될 정도로 그 방식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독보적이었다. 당시 이 연합이 개발하여 수천 명이 한꺼번에 시민불복종운동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비폭력 트레이닝과 모둠(affinity group) 모델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대규모 불복종 운동에서 차용되고 있다. 클램쉘연합의 핵발전소 건설현장 점거시위는 1976년 18명으로 시작하여 이듬해인 1977년 2,40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수백 개의 모둠을 만들어 건설현장을 점거하였고 1,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연행되는 것으로 발전했다. 당연히 대중 매체의 스포트라이트가 감옥에 갇힌 활동가들을 포함, 핵에너지 이슈에 집중되었으며 미국 전역에서 지지 시위가 일어났고 수많은 반핵에너지 활동단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에 핵에너지에 관한 대중들의 호감도와 21세기 초까지 1,000기 이상의 새로운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한 찬성도를 생각했을 때 가히 혁명적인 사회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유명인사 활동가들을 만날 생각에 모이어는 들떠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 자랑스러워하는 활기차고 밝은 그룹을 만날 것을 기대했던 모이어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죽고 우울한 모습으로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였다’고 말하는 활동가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지난 2년간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시브룩 원자력 발전소가 여전히 건설되고 있었고 새로운 핵발전소 1,000기를 건설한다는 정부의 계획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번아웃에 시달렸고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운동의 전략과 방향성(비폭력 전략을 버리고 폭력적 게릴라 전술이나 군사주의적인 행동을 하자는 주장)을 두고 필요 이상으로 논쟁이 과열되고 있었다. 

이 날이 모이어가 밤을 세워 MAP을 구상한 날이다. MAP은 사회운동을 평가하고 조직하기 위한 툴이다. MAP은 일반적으로 몇 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사회운동의 8가지 단계와 각 단계에서 대중, 권력자, 사회운동(가)의 역할을 설명한다. 1)  사실 수십 년 전 미국의 클램쉘연합이 겪은 낙담과 붕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22년 한국에서 주위를 조금만 돌아봐도 비슷한 분위기의 비슷한 얘기를 하는 단체와 활동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활동착수(MAP에서 설명하는 사회운동의 8단계 중 4번째에 해당)’라는 단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회운동 단체들과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실패했고 권력기관은 너무 강력했으며 자신들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는 ‘실패의 자각(MAP의 5단계에 해당)’ 단계를 겪는다. 모이어는 심지어 상당히 잘 진행되고 있어 실패의 자각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운동도 물어보면 대부분 이 단계를 거쳤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출처: 전쟁없는세상, 2019,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빌 모이어는 MAP을 설명하면서 사회운동가들은 대부분 ‘활동착수광(take-off junkie)’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이 표현을 읽자마자 진짜 말 그대로 무릎을 탁 쳤다. 맞다. 우리는 모두 활동착수광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회의 모순에 만감하고 이것을 문제제기할 새로운 사회운동을 만들 줄 알고 곧잘 만들지만 일련의 연속적인 단계를 통해 진행되는 장기적인 운동을 하면서 실제 긍정적인 변화를 얻어내는 방법은 잘 모른다. 많은 활동가들이 ‘활동착수’ 이후 몇 년도 안돼 내 운동은 실패하고 있고 내 노력은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번아웃에 시달리고 이것이 종내는 활동의 중단, 운동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을 종종 봐왔다. 사회운동의 8단계로 보면 4단계와 5단계를 거쳐 이런 저런 이유로 운동이 사라지고 (운이 좋다면 살아남아) 다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 4단계, 5단계를 거치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전쟁없는세상도 2012년 과거 1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10년을 계획하면서 이 툴을 활용했다. 우리의 활동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꼬박 이틀에 걸쳐 토론했고 현재의 메인 캠페인과 조직꼴을 갖추었다. 우리가 번아웃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활동가들의 역할이 다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스스로가 임파워링되는 경험을 했다. 특히 ‘아 다른 운동도 다 우리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구나’, ‘우리의 현재가 사회운동의 과정 중 하나였구나’라는 깨달음이 임파워링의 포인트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약속한 대체복무를 이명박 정부에서 없던 일로 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서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 대부분은 깊은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져 들어갔다. 대체복무라는 쉽지 않은 사회운동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는 이미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을 것이며 가능한 활동의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또 짜내가면서 캠페인 의제를 사라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허탈감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마틴 루터 킹도 간디도 MAP과 같은 사회운동 혹은 사회변화의 단계를 고안하고 트레이닝에 활용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MAP의 장점은 ‘실패의 자각’이라는 5단계를 전체 단계에 넣어 대부분의 사회운동이 필연적으로 이 단계를 거쳐 간다는 것을 공식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많은 목표 중 하찮은 목표라고 느낀다. 다수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권력자들이 이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활동착수 단계처럼 활력이 크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운동이 죽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는 운동이 죽은 것이 아니라 조금 사그라든 것뿐인데 언론에서 운동이 죽은 것처럼 보도를 하고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활동착수 시기에 거의 365일 주말도 없이 24시간을 완전히 투쟁에 몰입하기 때문에 넉다운이 되어 버리는 투쟁의 피로(battle fatigue)를 겪기도 한다. 투쟁의 고조 시기가 있으면 반드시 조직들이 평가를 통해 장기적인 투쟁 태세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실패의 자각 단계로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5단계는 사회운동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단계이지만 사회운동가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단계이기도 한 것 같다. 지난 칼럼에서도 얘기했지만 사회운동가들이 일군 성공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런 대단한 사회변화를 이끌 힘이 사회운동가들에게 있다. 5단계를 넘어 6단계로 진입하려면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인식은 필수적이다. 어쩌면 5단계는 이미 6단계인지 모른다. 나와 우리 조직의 역할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다. 사회운동에서 내가, 우리 조직이 가진 장점을 잘 파악하여 전체 운동에 기여할 역할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MAP을 고안한 모이어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 툴이 제시하고 있는 것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사회운동은 역동적이며 MAP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이론적 모델이기 때문에 실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의 사회운동은 다양한 서브캠페인,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가지고 있고 그 단계들이 전부 다른 경우도 많다. 이 툴은 성공적인 운동의 장기적인 지도(MAP)를 제공하여 활동가들에게 긴 안목을 갖게 하고 임파워링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또 평가를 거쳐 효과적으로 사회운동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논의를 통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인하고 이미 달성한 성공을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 전술들을 개발하며 있을 수도 있는 운동의 함정을 예상하고 피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1) 칼럼의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MAP 이론의 전부를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다. 또 MAP을 활용하여 어떻게 우리 캠페인을 평가하고 보다 효과적인 캠페인을 설계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혹시 MAP에 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전쟁없는세상이 사회운동의 전략화를 위해 2019년 구축한 guide2change.org를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이 홈페이지는 같은 내용의 가이드북을 온라인으로 구현한 것인데 사무실에 실물 가이드북도 약간량 남아 있으니 혹시 책이 필요하신 분들은 전쟁없는세상으로 따로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 이 글은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