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늬/판 칼럼] 지금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 '쉼'을 챙길 수 있을까.

서울시NPO지원센터2022.12.15조회 789스크랩 0

지금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 '쉼'을 챙길 수 있을까. 


서울시NPO지원센터, 2022. 12. 15.

하늬 ㅣ 평화활동가 


평소보다 바쁜 요즘이었다.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는 일정이 연달아 있었고, 동시에 마감해야 하는 글이 여러 개였다. 마음이 분주해지니 시간이 짧아졌다. 나는 내 마음 속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가던 운동을 잠시 멈추었으며 식사 시간을 줄였다. 이 때 식사 시간이란 준비와 정리 과정을 모두 합친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읽거나 쓰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어깨 뒤쪽이 결리더니 등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한없이 무거워져서 장을 본다거나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먹기 어려워,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먹었다. 이런 생활 패턴이 결코 내 자신에게 건강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중단하기 어려웠고 대신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이 일정만 끝나면 다시 내 몸을 챙겨야지. 이 일정만 끝나면.’ 


하지만 일정은 끝나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새로운 일이 생겼다. 긴박하게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처리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있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어제도 간단하게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를 위한 것들을 미루려고 했을까. 나만 할 수 있는 건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먹거리를 주문하고, 요가매트를 바닥에 깔고 스트레칭을 했다. 한동안 매트 위에 누워 눈을 감고 매트에 닿는 몸 구석구석을 느껴 보았다. ‘내 몸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제야 편안하고 깊은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사실 NPO지원센터에서 요청받은 글의 주제는 ‘활동가의 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현재의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쉼을 잘 챙기고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우선순위로 쌓아왔던 습관이 흔들리는 지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돌아보는 시간만큼이나 ‘나’에 대해 집중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싶어서. 


지금도 유효하긴 하지만, 과거의 나에게 쉼은 여행이었다. 여행 자체는 피곤하고 여독이 늘 따라 붙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힘과 일상을 밀고 나아갈 힘을 되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딘가로 향했다. 하지만 건강으로 인해 휴직을 해야만 했을 때, 물리적으로 쉴 수 있었지만 정작 쉼이랄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시도했던 것이 꾸준한 운동과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 먹는 것이었고, 이 둘은 점점 더 내 일상을 받쳐주는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콩과 야채가 듬뿍 들어간 토마토 스프는 몸과 마음의 기운을 높여주는 나만의 음식이다. ©하늬> 


몸 컨디션에 따라 매일 챙길 수는 없어도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음에 드는 운동복을 입고 체육관에 가서 온몸의 근육을 깨우고 나면 개운한 기운 덕분에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 또, 준비와 정리 과정이 함정이긴 해도 직접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나를 가장 잘 챙기는 자세였다. 이 습관들은 내 몸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마음을 다스리는데도 큰 힘이 되었다. 그때 알았다, 의식과도 같은 작은 습관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 준다는 것을. 마치 여행처럼 말이다. 


쉼을 챙긴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겠다는 나와의 약속이자 선언이기도 하다. 쉼을 갖는 시간만큼은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자 그 시간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향유하는 것이고, 내가 좋아하고 즐겁게 느끼는 것을 만끽하는 순간의 총합이기도 하다. 충분한 쉼은 놀랍게도 내 안에 머물렀던 따뜻한 시선이 바깥을 향해,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힘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하나씩 구매했던 홈트 기구들이다. 코로나19로 체육관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 ©하늬> 


그런데 이 쉼은 나만의 것이라서 종종 미뤄지거나 운동이나 요리와 같이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습관들이라면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가끔은 쉼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나를 보호하는 단단한 막이 깨지고 부서지면 삶을 받쳐주는 힘의 근원도 샘솟을 수 없다. 


사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새롭거나 놀라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매번 잊고 산다. 잊고 사는 것도 모르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또는, 지금은 아니라고 애써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순간도 종종 있다. 언젠가는, 나중에는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만약 쉼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면 너무나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나와 같이 쉼이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그러지 말자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가 가기 전, 쉼을 챙기겠다는 나와의 약속이자 선언을 또렷하게 기억하자. 여행이나 운동, 요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만이 알고 있는 쉼의 묘약이 있다면 마음껏 음미하고 즐기자.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자주 기억하자.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 이 글은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