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판칼럼] 대화와 소통 #1. 소통은 왜 필요한 걸까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2023.11.10조회 482스크랩 0

대화와 소통 

#1. 소통은 왜 필요한 걸까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2023.11.10.

이은주 | 와이즈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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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와이즈서클 대표는 '대화와 소통'을 주제로 4편의 '판 칼럼'을 연재합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소통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1. 소통은 왜 필요한 걸까

#2. 소통력을 높이면 기대할 수 있는 변화

#3. 대화는 생각이 아닌 '마음의 일치'를 위한 것

#4. 더 나은 민주 사회를 위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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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협력적 소통을 통해 공동의 지혜를 얻는 과정에 관심이 있거나 실제 적용해 보고자 하는 곳에 초대받아 간다. 가서는 앞에서 혼자 말하는 강의 형식보단 함께 원으로 둘러앉아 모두가 말하는 워크숍으로 주어진 시간을 이끄는 편이다. 이미 배워선지,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 원활히 되려면 자기 의견을 상대가 알아듣게 잘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나와 다른 생각도 존중하며, 열린 마음과 개방적 사고로 대화에 임하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간단한 시뮬레이션이나 미니 실습을 통해 우리들이 실제 어떻게 소통해 왔는가를 함께 들여다보면서, 앞으로 바라는 각자들의 소통 습관이나 조직의 소통 문화를 다시 쌓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고자 한다. 

참여형 강좌들이 조금 늘어난 덕에 실습 앞에서 ‘뜨악’하시는 분들이 10여 년 전보단 많이 줄었지만, 낯설어하고 불편해하는 분이 여전히 계시긴 하다. 




🤐 비난받을까 두려워 서로가 소통을 피하는 시대


자신의 말 하고 듣는 모습을 드러내기 싫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피곤할 수 있다. 스스로가 좋아하지 않는 자기 모습을 마주하는 게 싫을 수도 있고, 원치 않게 지적을 받는 비난의 주인공이 될까 봐 두려울 수도 있다. 최근에는 ‘TMI 한다며 창피 줄까 봐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렵다’, ‘꼰대 소리 들을까 겁나서 그 어떤 말도 꺼내기 싫다’는 말도 종종 듣게 된다. 두세 시간 짧은 교육 시간이야 뭐 잠깐 보고 말 사이인데, 그렇게까지 싫으면 안 하길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매일 보고 매번 같이 일하는 사이라면? 가끔이라도 만남을 이어 나가야 하는 관계여도 쉽게 소통을 보이콧 할 수가 있을까.

언어를 사용한 소통 행위는 다양한 기능을 한다.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등 내용 자체를 전달할 뿐 아니라, 원숭이의 털 고르기 같이 서로를 돌보기 위한 행위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듯이, 말을 주고받을 때 전달받는 정보에는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뿐만 아니라, 눈과 귀를 두어야 할 곳도 여러 곳이다. 많이 알려진 ‘메라비언(Mehrabian)의 법칙’으로 보자면, 일단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언어적 표현에 단 7퍼센트만이 담기고 나머지 93퍼센트는 어투나 억양, 목소리 톤, 손짓, 눈빛, 표정 등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전달될 것이다. 93퍼센트라니, 엄청난 비중이지 않은가! ‘이것을 해주세요’ ‘괜찮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등의 말을 들을 때 표면 아래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비언어적 신호에 담긴 메시지에 아주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의사소통이 복잡하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


자신의 견해나 경험을 나누거나 서로가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우리는 말을 섞는다. 묻고 답하며 듣고 또 궁금해하고 고개 끄덕이고. 의사소통이란 어떻게 보면 몹시 간단하면서도 단순한 교환 과정 같기도 한데, 실제로는 왜 그리 복잡하고 피곤한 행위가 되는 것일까?

딘 반런드(D.C. Barnlund)라는 의사소통 이론가는 소통에 6가지 견해가 꾸준히 관여한다고 말했다. 


 -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 내가 상대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 나는 상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긴다고 생각하는지

 - 상대는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 상대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 상대는 내가 본인을 어떤 사람으로 여긴다고 생각하는지


이 여섯 가지 견해가 소통의 모양과 질을 매 순간 다양하게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나 자신을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새내기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선배는 실수 하나 없는 완벽한 활동가라고 여기면서 선배와 소통할 때, 그 선배는 나를 분명 실수투성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추측하면서 그를 마주하니 무슨 말을 하든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쭈뼛거리게 된다. 같은 상황에서 선배 활동가는 본인을 명석함은 떨어져도 친절한 선배라고 생각하는데, 마주 보고 있는 후배는 내가 말할 때마다 항상 집중을 안 하고 딴 생각하는 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일단 얘는 내가 자길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잔소리 많은 꼰대 선배쯤으로 여길 거라 가정하며 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의사소통은… 맞다. 간단치가 않다. 표면적으로 오가는 말들의 향연 뒤에는 이를 지휘하는 견해들이 있는 것이다. 자신과 서로를 향해 형성하는 판단들이 소통에 복잡한 역동을 만든다. 더는 소통에 진척이 없고 그저 답답함만 느껴지거나 기분이 상한다면, 이러한 6가지 견해들이 소통의 내용적 측면을 압도하면서 양쪽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소통의 질과 그 방향을 결정하는 ‘암묵적 메시지’


이런 상황도 있다. 병원으로 걸려 온 전화에 간호사가 높은 어조로 성을 낸다. “할머니! 아까 오셨던 분 맞죠? 전화 왜 하셨어요?” 그런데 어쩔, 아니었다. “아, 아니세요? 그럼 무슨 일이신데요?” 자신의 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전화는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인 양 언어적으로도 비언어적으로도 상대를 마구 다그친다. “아니요, 9시부터 아무것도 안 드시고 다음 날 아침에 오시면 돼요. 아니요, 9시부터라고요! 9시!!” 이밖에 안내하는 여러 말을 해도 모든 말들은 ‘그런 당연할 걸 묻는 당신은 정말로 바보예요’ ‘바보하고 통화하는 지금의 내가 너무 싫어요’ ‘사소하게라도 실수로 잘못 말하거나 약간이라도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아주 혼쭐이 날 줄 알아요’ 하는 메시지를 반복해 들려주는 그저 변주곡 같다. 

병원에 전화를 건 환자는 채혈 전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주의할 점은 없는지를 물었다. 여기에 간호사는 이를 알려주면 될 일이다. 환자는 전화를 걸어 물으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곧바로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기대했겠으나,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은 노인이 바쁘게 일하는 젊은이를 성가시게 했고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인 내용을 모르는 자신이 어리석고 잘못했다는’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정보를 더 크게 전달받는다. 간호사가 보낸 숨겨진 메시지가 드러난 메시지를 압도해 버려서, 정작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정보 가운데 일부는 놓쳤을 수도 있다.


🤗 말을 주고받기에 안전하다고 느끼기


누구나 다치거나 아파하고 싶지 않은데, 의사소통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음 다치지 않고 서로에게 친절하며 미소가 지어지는 모양새이길 바란다. 그런데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든 상관없이 상대가 화를 내거나 자신에게 핀잔을 줄지 모르니 최대한 소통을 피하려는 요즘인 것도 같다. 소통 상대가 달라져도 앞서 언급한 6가지 견해가 항상 고정값으로 정해져 있는 듯한 존재도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이런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려 본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관여하는 견해가 6가지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만이 관여하는 단순한 상황으로만 소통한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나와 상대 모두가 각자를 신뢰하며 서로 진솔하게 말하고 있음을 신뢰하고,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빠른 판단으로 논쟁하려 들거나 비난하려 들지 않을 ‘안전한 소통의 장’ 안에서 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안심과 안정감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호기심으로 깊이 듣고, 솔직하게 말하며, 궁금한 점은 편히 묻고 하는 그러한 모습 말이다.

그리하여 같은 공간에서 함께 활동하거나 생활하는 이들과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할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요즘 어떻게 여긴다고 느끼는지, 자기 스스로에 관해서는 또 어떠한지, 기존에 형성한 견해 가운데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혹시 새롭게 생긴 견해 가운데 확인하고픈 지점은 어디인지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을 만한 특정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서로에게 뭐든 궁금한 점을 직접 묻고 답하는 형식을 취하거나, ‘우리가 더욱 안전하게 소통하기 위해 요즘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 주제를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 안전하게 소통하는 곳으로 만드는 노력


하나를 건드리면 전체에 손을 대야 할 필요가 생기듯, 어쩌면 안전한 소통의 장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다. 자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마음 건강은 요즘 어떠한지, 서로에게 얼마나 마음을 연 채로 생각과 견해들을 공유하고 있는지, 마음을 더 열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드러내어 확인하지 않아서 왜곡된 추측이나 오해들, 삐딱선을 타버린 근본 가정들은 없는지 등을 정기적으로 살피자는 것이니 말이다.

이것만을 위한 내부 워크숍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이를 일상화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이번 주에 기대되는 것과 염려되는 것 한 가지는?’ ‘이번 주 만족스런 업무 진행을 위해, 자신에 관하여 동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등의 질문으로 안부를 묻고,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오후에는 ‘이번 주는 자신에게 어떠한 색깔이었던 것 같나요?’ ‘이번 주 스스로에게 뿌듯한 것과, 동료들에게 감사한 것 하나는?’ 등의 주제로 간단히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코너를 마련하는 것이다. 

특별 주제를 정해볼 수도 있겠다. ‘요즘 자주 찾아오는 감정 중 한 가지는 무엇이고, 이는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은지?’, ‘‘나 같으면 이렇게 해볼 것 같아요~󰡑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듣고 싶은 요즘의 자기 고민이나 망설이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 이러한 시간을 통해 서로에 관하여 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 관해서도 잠깐씩이라도 이를 표현해 보는 행위가 공간 안에 신뢰를 함께 형성해 나가는 하나의 길이 되지 않을까.




😶‍🌫️ 우선, 나와의 소통부터


그 무엇보다, 의사소통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준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다. 인간의 뇌는 수다쟁이다. 위가 음식물이 들어오면 소화시키는 일을 하듯, 뇌도 자기 일을 꾸준히 한다. 끊임없이 생각을 늘어놓거나, 온갖 쌓여 있는 기억 중 아무것을 아무 때나 송출하기도 한다. 그런 뇌가 다른 이와 소통이나 교류 없이 혼자만 오래 있다 보면 자기 독백만 무한 반복하느라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인식 감각을 점점 잃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와도 나아가 타인과도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모두가 서로에게 기여가 되는 동료가 되어주길 바라고 구성원들이 목표를 향해 같이 힘을 모아야 할 상황이라면, 이를 돕는 소통 생활이 전반적으로 건강한 상태인지를 서로들 먼저 살펴주고 필요한 경우 함께 숙고해 보는 시간 갖기도 고려해 볼 만한 것 같다.  (끝)


* 이 글은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